|||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투비컨티뉴드 아카이브

에브리싱 베이글

조이: 어느질려서 정말로 모든베이글 위에 올려봤어. 모든 걸. 내 꿈과 희망, 내 성적표, 모든 종류의 개, 모든 크레이그리스트 구인구직란, 참개, 양귀비 씨앗, 소금. 그게 하나로뭉치더니 무너지기 시작한 거 있지? 정말로 모든베이글 위에 올리면 이렇게 돼. 진리.
에블린: 진리가 뭔데?
조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

중에 등장하는 에브리싱 베이글’이 실제로 존재하는 음식이라는알고 계시나요?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에브리싱 베이글은 베이글 위에 온갖 토핑을 올려서 제빵한 것인데 토핑으로는 주로 캐러웨이 씨앗, 마늘 플레이크, 양파 플레이크, 참깨, 소금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인지 찾아보기 힘든 음식인데 미국에 사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깨와 마늘 향이 강하고 맛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에브리싱 베이글을 알게계기는 시트콤 <브루클린 99> 때문인데 <브루클린 99> 시즌 2 에피소드 8에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제이크: 지각해서 미안해. 간이 식당에 가서 에브리싱 베이글을 환불 받느라고 늦었어. 에브리싱 베이글에 어떻게 쇠고기 육포가들어갈 수 있지?
로자: 원래들어가.

<브루클린 99> 시즌 2 에피소드 8

에브리싱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온갖 재료가들어갈같지만 실제로 모든올라가지는 않는다는, 농담이 섞인 장면인데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등장하는 베이글, 더 정확히 말해서 정말로 세상의 모든 만물을 올려둔 베이글일종의 말장난인 셈입니다. 굳이 한국식으로 번안하자면 진짜 군부대가 들어간 부대찌개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에 등장하는 에브리싱 베이글은 영화의 중요한 이미지이자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원’ 이미지가 무수히 많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원은 영화에서 진리’로서, 베이글로서, 구글 아이로서, 가족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 드럼 세탁기의 구멍으로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으로서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며 드러납니다. 원은 도형일 뿐이지만, 그 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이번 글에서 논할 내용들이 모두 제작진들의 의도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작품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관객들의 몫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중에 등장하는 원과 같습니다. 제작진들이 원을 그렸다면원에 의미를 부여하고, 받아들여서, 해석하는 것은 관객들의이기 때문입니다.

대중매체멀티버스의 역사

영화의 주요 소재가 멀티버스인 만큼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대중매체에서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차용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회사는 DC 코믹스입니다. DC 코믹스에서1953년 연재한 원더우먼 #59 <원더우먼의 보이지 않는 쌍둥이> 편에서 멀티버스 개념이 처음 소개됩니다. 여기서 원더우먼인 다이애나 공주는 타라 테루나(Tara Terruna)’라는 또 다른 원더우먼을 만나게 됩니다. DC 코믹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멀티버스인 셈이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멀티버스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일회성의 소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원더우먼에서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최초로 소개되고 8년 후인 1961년,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되는 만화가 등장합니다. 플래시 #123 <두 세계의 플래시> 편인데요, 이 만화에 대해 얘기하려면 우선 플래시의 역사를 이야기필요가 있습니다. 플래시는 1940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이때 처음 등장한 플래시는 1대 플래시 제이 개릭’이었습니다. 공복에 담배를 피우며 실험을 하던 과학자 제이 개릭은 담배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껴 실험 도구를 엎는 바람에 가스를 흡입하면서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초능력을 얻게인물이지요.

1938년 슈퍼맨이 코믹스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전성기를 구가하던 히어로 코믹스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원더우먼 코믹스에서 처음으로 소개되고 3년 후인 1956년, DC 코믹스에서는 히어로 코믹스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대적인 리부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미국 코믹스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골든 에이지’와 실버 에이지 그리고 모던 에이지’와 같은 용어를 접해본 적이 있으실 텐데, 이 리부트를 기점으로 골든 에이지’와 실버 에이지’가 구분됩니다. 이때 1대 플래시인 제이 개릭이라는 캐릭터는 2대 플래시 배리 앨런’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배리 앨런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플래시입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코믹스 독자들은 설정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만화를 읽었기 때문에 1대 플래시 제이 개릭’이 2대 플래시 배리 앨런’으로 바뀐 것에 대해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DC 코믹스에서는 배리 앨런이 제이 개릭’이 등장하는 플래시 만화를 읽는 장면을 넣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플래시가 사실은 극중극, 그러니까 만화만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1961년, 플래시의 스토리 작가인 가드너 폭스와 편집자 줄리우스 슈왈츠는 1대 플래시인 제이 개릭을 만화에 다시 등장시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플래시의 편집자였던 줄리우스 슈왈츠는 세계 최초의 SF콘 개최자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소문난 SF 장르 매니아였던 것의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이들이 연재한 플래시 #123 <두 세계의 플래시>에서 플래시는 초능력을 발현하던우연히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배리 앨런은 (본인의 입장에서는 만화등장인물인) 제이 개릭이 진짜 플래시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배리 앨런은 제이 개릭과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해 활약하게 됩니다.

<두 세계의 플래시>는히트를 쳐서 후대의 코믹스에 막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개중에 하나가 바로 멀티버스’라는 소재인데요, 이 멀티버스 개념 덕분에 히어로 코믹스의 영역과 세계관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통해 설정의 제약을 극복할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멀티버스’는 DC 코믹스를 넘어 마블 코믹스, <스타트렉>, <닥터 후>와 같은 다양한 창작물에서 차용되어 세계를 확장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활용됩니다. 근래에는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은 <릭모티>가 히트를 치면서 멀티버스 소재의 인기를 크게 견인했고, 마블 스튜디오에서도 자사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멀티버스 요소를 소개하고 도입하는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멀티버스 소재의 성취와 한계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논하는데 빠뜨릴없는 작품이 바로 <릭모티>입니다. 2013년에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패러디로 시작된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멀티버스를 위한, 멀티버스에 의한, 멀티버스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의 중심에는 우주에서 가장 똑똑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산체스’가 발명한 놀라운 발명품 포탈 건’이 있는데, 이 포탈 건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멀티버스로 이동하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릭 산체스는 이포탈 건을 이용해 무한한 멀티버스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있게 되었습니다.

<릭모티>에서 적극적으로 차용한멀티버스 소재는 팬들에게 참신한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패러독스와 같이, 개념상의 제약이 많은 시간여행 개념과 달리 멀티버스 개념은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선한 설정과 스토리를 선보일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릭모티>의 이러한 신선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멀티버스 소재의 무한한 가능성이제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릭모티>의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했지만, <릭모티>의 제작진들과 작가들도 인간인 만큼 계속해서 신선하고 새로운것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하지만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멀티버스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무한한 우주가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사는세상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이런 질문과 결론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근본부터가 염세주의적이고, 비관주의적이며, 회의주의적인 속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릭모티>의 주인공산체스는 극단적인 염세주의자인 이유가때문입니다. 릭 산체스는 극단적인 알콜 중독자이자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상할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고, (어떤 멀티버스든) 갈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가지고 있는산체스이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수많은 멀티버스에 동시에 존재할있게조이가 미쳐 조부 투바키’가이유는산체스가 염세주의와 비관주의에 빠진 이유와 동일합니다. 조이는 조부 투바키로서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전지전능한 존재인 조부 투바키에게세상은 농담이나 다름 없습니다. 극 중에서 조부 투바키는 말합니다.

어느질려서 정말로 모든 것을 베이글 위에 올려봤어.
(…) 그게 하나로뭉치더니 무너지기 시작한 거 있지?
정말로 모든베이글 위에 올리면 이렇게 돼.”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멀티버스는 대단히 자본주의적인 소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본주의는 어느새 세상에 군림하는 유일한 체제로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이상 탐험할 미지의 영역조차 주어지지 않은대안 없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탈출할없는답답한 현실 속에서 멀티버스라는개념은 우리의 숨통을 트여줍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멀티버스는 자본주의 친화적인 소재이기도 한데, 무한한 상업적가능성을 가진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상업적인 영화 스튜디오하나인 마블 스튜디오에서 멀티버스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 하는 것은 바로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나아가 멀티버스는 자본주의의 은유라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해 대안 없는 체제로 굳어진 후로 자본주의에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누적되고있습니다. 번아웃, 우울증, 무기력, 절망과 체념 등은 바꿀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린 결과물들입니다. 염세주의, 회의주의, 비관주의와 같은 멀티버스 소재의 필연적 귀결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이기도 합니다.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성취를 꼽으라고 한다면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가진 이러한 속성을 간파하고,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멀티버스라는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자본주의 체제까지 끌고 오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으실있겠습니다. 그렇다면영화의 중요한 공간적 배경하나가 미국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이라는 것을 떠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조이, 에블린, 웨이먼드의 세계

조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기술을 개발한 알파 세계의 에블린은조이를 끊임없이 압박했고, 결국 조이의 정신은 무너져 현존하는 모든 멀티버스에 동시에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조부 투바키’가 되었습니다.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며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한 조부 투바키는세계가 무의미하다는것을 깨닫고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조부 투바키는 앞서 논했던 멀티버스의 필연적 귀결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약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조부 투바키에게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허한 세계입니다. 베이글 위에 진짜로 모든 것을 올리자 그것들이 하나로 뭉치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조부 투바키의 내면을 상징하는 장치입니다. 극단에 달한 염세주의는 자기 파괴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조부 투바키, 즉 조이의 욕망이 드러납니다. 조이는세상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며, 세상의 의미를 찾기 위해노력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세상의 의미를 찾는데 실패해 조부 투바키가 되어버렸고,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에블린을 자신과 같이 - 모든 곳에 존재하며 만물을 보고 경험하는 -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후반부에서 조부투바키는 고백합니다. 에블린이 다른 관점에서 자신을 막아주길 원했다고.

결국 조이는 의미가 없어 보이는 세계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정 에브리싱 베이글로 대변되는 조부 투바키의 테마는 무의미’입니다.

여기서부터 논의가 흥미로워집니다. 조부 투바키의 테마가 무의미’라면 에블린의 테마는 무엇일까요? 에블린은 조부투바키와 대칭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클라이막스에서 웨이먼드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에블린의 테마가 자연스럽게 의미’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에블린의 테마를 단순히 무의미에 대비되는 의미’라고만수는 없습니다. 사실 완벽하게쌍을 이루는 짝패끼리의 싸움은 승부가 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체스에는 스테일메이트’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체스의 규칙에 따르면 킹은 자살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체크 상태가 아닌데 다음 턴에서 공격을 받지 않고 이동할 방법이 없을스테일메이트가 선언됩니다. 스테일메이트 상태가 되면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게 됩니다. 서로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싸움은 스테일메이트 상태와 같아서 무승부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에블린의 테마가 의미’가 아닌 이유는있습니다. 에블린은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부 투바키가 만물을 흡수하는 에브리싱 베이글을 보여주는 순간까지 에블린은 삶이나 세상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묘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세상의 의미 같은 것에 대해 성찰하기에 에블린은 너무 바쁜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에블린의 테마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에블린은 항상 바쁩니다.

에블린이 바쁜 이유는 에블린에게 감당해야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노망이아버지를 보살펴야 합니다.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남편, 웨이먼드를 대신해서 세탁소를 경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합니다. 세금도 정리해야 하는 데다가 말 안 듣고썩이는 딸도 감당해야 합니다. 에블린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광둥어를 사용하고, 웨이먼드는 보통화, 조이는 영어를 사용합니다.) 에블린이 없다면 가족들은 제대로 소통을수조차 없습니다.

에블린이모든 것을 감당하는 이유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에블린의 인생은 에블린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 만들어진것입니다. 웨이먼드를 믿고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온 것, 세탁소를 영업하기로 한 것, 결혼을 해서 딸을 낳기로한모두 에블린이 선택한 결과들입니다. 그 선택이 옳은 것이었나 의심하고 때로는 후회하기도 하지만, 선택에 대한결과는 에블린이 오롯이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블린의 테마가 드러납니다. 에블린의 테마는 선택과 책임’입니다. 에블린의 삶은 무수히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이고, 에블린은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며 살아왔습니다. 정신이 나갈 것처럼 바쁜 삶을 사는 에블린이지만정신을 잃지 않고 버틸있었던 것은 에블린이 스스로 내린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이의 세계와 에블린의 세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조이와 에블린이 가진 콤플렉스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조 이의 콤플렉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선택해서 바꿀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에블린의 콤플렉스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되기에 후천적입니다.

정리하자면 에블린과 조부 투바키는 애초에 대립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조이와 에블린의 싸움은 대칭을 이루지 않습니다. 조이의 세계가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세계라면 에블린의 세계는 수많은 선택과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표면적으로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부 투바키의 영향을 받은 에블린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에블린이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되는 것은 남편인 웨이먼드를 통해서입니다. 에블린의 입장에서 웨이먼드는 한심한 남편입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기둥이 되어주어야웨이먼드는역할을 방치하고 있어, 에블린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에블린의 입장에서 웨이먼드는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못마땅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이 무너져 모든 곳의 웨이먼드를 만나게에블린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책임하고 생각 없이 보였던 웨이먼드도 사실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죠. 조이가 우울하고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고 있고, 에블린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 싸우고 있다면 웨이먼드는 사랑과 행복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겁니다.

이는 에블린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세계를 살며,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블린은이상 싸우지 않습니다. 대신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에블린은 웨이먼드의 방식으로 싸우겠다선언하는데, 이는 싸움 대신 이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조부 투바키인 조이가 자멸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는 이해의 역설 때문입니다. 에블린이 조부 투바키인 조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조부 투바키의선택, 즉 자멸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실제로 에블린은 잠시 조이를 이해하고, 조이가 스스로 자멸할있도록 놓아줍니다. 그리고 바로순간 에블린은다른 깨달음을 얻습니다.

바로 에블린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입니다. 물론 에블린은 조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조이가 자멸하도록내버려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블린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에블린을 에블린으로 만드는 것은 책임감입니다.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인물입니다.

이는 영화에서 본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멀티버스수많은 에블린의 모습들로 제시됩니다. 자신의 선택으로인해 잡혀간 라카쿠니를 구출하기 위해 달리는 에블린의 모습, 디어드리의 입에 마침내 핫도그를 넣어 사랑을 표현하는 에블린의 모습, 절벽으로 떨어진 조이를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도 절벽 아래로 몸을 집어던지는 에블린의 모습 등은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에블린의 모습보여줍니다. 에블린은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에블린은 조이라 자멸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좋든 싫든, 에블린은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조이는 에블린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순간, 에블린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완성

마지막으로 에블린과 조이는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존재라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조이에게 에블린이 필요했던 것처럼, 에블린에게는 조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책임을 지는 에블린에게 무의미는 숨통을 트여줍니다. 반면에 세상 만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조이에게 에블린의 책임감은 무의미한 세상 속에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등대 역할을 해줍니다. 세계와 세계가 만나나은 세계로 발전할있다는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결론이 아닐까 합니다.

Up next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타래 아카이브 〈NOPE〉 투비컨티뉴드 아카이브
Latest posts [책]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아바타2: 물의 길〉 투비컨티뉴드 아카이브 〈장화신은 고양이2: 끝내주는 모험〉 투비컨티뉴드 아카이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투비컨티뉴드 아카이브 〈NOPE〉 투비컨티뉴드 아카이브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투비컨티뉴드 아카이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타래 아카이브 〈어드벤처 타임: 버블린〉 타래 아카이브 [영화] 닫힌 세계와 그 친구들(2022) 〈모노노케 히메〉 타래 아카이브 〈벼랑 위의 포뇨〉 타래 아카이브 〈하울의 움직이는 성〉 타래 아카이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타래 아카이브 [영화] 친구의 얼굴(2020) [영화] 최초의 가족(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