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어드벤처 타임> 일타강사를 자청하며 어드벤처 타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정확히는 어떤 에피소드, 어떤 장면에서 버블검과 마셀린이 사귀기 시작했는지를 정확하게 밝혀낼 건데요, 놀랍게도 둘이 연애를 시작한 지점은 본편에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화면 밖에서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사랑을 고백한 순간은 화면 밖에서 이루어졌을 지언정,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은 어드벤처 타임의 본편 속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버블검 공주와 마셀린의 관계에 대한 타임라인을 정리하기에 앞서, 이들이 팬들 사이에서 엮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짚고 가야겠습니다. 이들이 엮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3x10
이 장면 전까지만 해도 버블검과 마셀린이 교류하는 장면이 거의 묘사되지 않았어요. 몇 안 되는 교류 장면 중 하나가 2x20
둘 사이에 시청자가 모르는 모종의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에 팬들은 본격적으로 버블검과 마셀린의 관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일이 재밌어지기 시작한 것은 팬들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제작진들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는 건데요.
소위 ‘버블린’ 커플링에 대한 팬들의 수요가 높아지기 시작하자 아담 무토(후기 어드벤처 타임 제작자), 레베카 슈가(스티븐 유니버스 크리에이터)와 같은 제작진들이 본격적으로 버블린 커플링에 응답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버블검과 마셀린 관계의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하죠.
사실 시즌 2까지만 하더라도 버블검과 마셀린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추후에 다시 사귀게 된다는 내용은 계획에 없었습니다. 당시 펜들턴 워드가 구상했던 둘의 관계는 절친한 친구였다가 모종의 이유로 틀어졌고, ’핀’을 놓고 연적으로 갈등하는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는데, 한 국가를 운영할 정도로 책임 있는 어른인 버블검과 철부지인 13살 어린이인 핀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던 겁니다. 3x05
이 에피소드에서 버블검 공주는 모종의 이유로 핀과 비슷한 연령대로 어려집니다. 평생 버블검 공주를 사랑했지만 관계에 진전이 없던 핀은 이 에피소드에서 마침내 연인으로서의 진전을 이루게 되지만 버블검이 다시 어른이 되기로 하면서 이 모든 진전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결국 이 에피소드는 어째서 핀과 버블검 공주가 이어질 수 없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핀과 버블검 공주가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 못 박힌 지점이 바로 이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핀은 여러 다른 공주들을 전전하다가 플레임 프린세스를 만나게 되죠.)
지금까지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작품 내적인 배경으로 넘어가 봅시다. 버블검 공주 - 마셀린의 관계를 타임라인으로 재구성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그만큼 본편에서 상세하게 다뤘기 때문입니다.
버블검은 록스타 마셀린의 팬이었습니다. 마셀린이 공연 중 던진 티셔츠를 버블검이 받은 사건을 계기로 둘은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져 사귀게 되었죠.
하지만 둘의 첫 연애는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버블검은 모든 걸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통제광이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마셀린과는 상극이었던 거죠. 결국 둘의 첫 연애는
꽤나 지저분하게 헤어진 터라 버블검과 마셀린의 관계는 이때부터 껄끄럽게 되었고, 그것이 본편의 시점까지 이어진 겁니다.
이제 첫 질문으로 돌아갈 때가 됐습니다. 그래서 둘은 언제 다시 사귀게 되었고, 어떻게 다시 사귀게 되었는가? 그 정답은 7x06에서 7x13까지 이어진 장편 에피소드
말뚝 편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담긴 노래,
이 장면에서 집중해야 할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뚝 편에서는 마셀린이 꾸는 이상한 꿈이 직접적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말뚝 편의 배경을 설명한 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말뚝 편이 시작하기에 앞서 버블검 공주가 왕좌를 빼앗긴 것도 어찌 보면 마셀린과의 관계를 성찰하게 만들기 위한 걸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애초에 버블검 공주가 왕좌를 빼앗긴다는 전개 자체가 마셀린과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전개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마셀린과 버블검이 헤어지게 된 원인부터가 버블검이 캔디 왕국을 운영하기에 바빠 마셀린에게 관심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잖아요? 이제 버블검은 군주가 아닌 자연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강조되는 에피소드도 따로 있는데, 7x02
어쩌면 상기한
이처럼
<어드벤처 타임>에서 영생이 갖는 의미는 명료합니다. 영생을 가진 자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마셀린이 철부지인 것도 뱀파이어가 되어 영생을 얻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셀린은 뱀파이어가 된 순간부터 정신적인 성장이 멈추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마셀린이 영원한 사춘기, 영원한 철부지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성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뱀파이어를 ’치료’하기를 요청하게 된 것이죠. 버블검의 ’치료’는 성공적이었고, 마셀린은 더 이상 뱀파이어가 아니게 됩니다. 마셀린은 성장할 수 있게 된 거죠.
물론 버블검의 ’치료’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했고,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우여곡절이 바로 <말뚝> 편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마셀린은 버블검과 함께 모험을 하며 ’성장’을 하게 되지요.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버블검과 마셀린이 사귀기 시작한 지점이 어디라는 거예요?’라며 답을 알려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우선 답부터 제시하겠습니다.
정답은 7x11 말뚝 파트 6 - Take Her Back (그녀를 돌려줘), 7x12 말뚝 파트 7 - Checkmate (체크메이트) 편입니다. 두 에피소드 중 앞선 에피소드에서는 마셀린이 버블검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내용이 묘사되고, 뒤의 에피소드에서는 마셀린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묘사되거든요.
우선 7x11
첫 번째 이상한 꿈: 사이먼, 베티, 마셀린이 행복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사이먼과 베티는 서로를 사랑하는 행복한 부부이며, 마셀린은 그들의 자식으로 보입니다.
이 꿈은 마셀린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꿈속의 사이먼과 베티처럼,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야말로 마셀린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었죠. 마셀린이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어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앞서 마셀린의 어머니가 말했듯 ’이상한 꿈은 사실 친숙한 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천방지축에 철부지인 마셀린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바라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라는 게 이 꿈에서 드러난 거죠.
그리고 문제의 두 번째 꿈. 이 꿈은 마셀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꾸는 꿈이며, 마셀린과 버블검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꿈이기도 합니다. 버블검이 한복을 입고 나와서 사람들의 모든 이목이 거기에 집중되는 바람에 정작 이 꿈의 의미는 거의 논해지지 않았죠.
이 꿈이 마셀린과 버블검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이유는 <말뚝> 편을 거치며 (약간의) 성장을 한 마셀린이 버블검에 대한 본인의 진심을 (꿈을 통해) 깨닫게 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마셀린이 버블검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점이 바로 이 꿈입니다.
다시 첫 번째 꿈으로 돌아가서, 마셀린은 (꿈속의 사이먼과 베티 부부를 바라보며) ’정원이 자라나듯이 사랑이 흘렀으면 좋겠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꿈에서, 마셀린은 ’정원에 작은 꽃들이 자라났는데 너(=버블검)는 그것을 잡초라 부르며 제거해 버렸다’며 투정합니다. 이는 소박한 곳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늙어가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버블검이 짓밟았다는 마셀린의 속마음을 넌지시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 꿈은 그런 마셀린의 속마음 외에도 중요한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마셀린이 함께 늙어가고 싶은 대상이 바로 버블검이었다는 것이죠. 사이먼과 베티가 함께 행복하게 늙어갔듯이, 마셀린은 버블검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버블검은 불사신입니다. 게다가
이 꿈을 통해서 마셀린은 깨달은 겁니다. 본인은 버블검을 사랑하며, 함께 늙어가고 싶지만 버블검은 나이를 먹지 않는 존재라는 걸 말이에요. 마셀린이 인간이 되어 자연스레 늙어가도, 버블검은 늙지 않을 것입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소망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꿈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꿈을 꾸는 동안의 상황인데, 버블검이 뱀파이어 ’더 문’으로부터 마셀린을 지키기 위해 끌어안고 있는 동안 마셀린이 위의 꿈을 꿉니다. 이 꿈을 꾸는 동안 마셀린의 자세는, 어머니와의 행복한 추억 속 자세와 동일합니다.
뱀파이어가 된 후로 천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철부지로 살아온 마셀린이 (잠시 인간이 되어) 성장을 하면서 자신이 버블검을 사랑한다는 것을 마침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장면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장면인 거죠.
이 꿈을 기점으로 해서 마셀린이 버블검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서 마셀린과 버블검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죄다 사랑의 고백이에요.
<말뚝> 편에서의 우여곡절이 끝났을 때, 마셀린과 버블검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말뚝> 편의 시작만 하더라도 마셀린은 뱀파이어를 치료하고 다시 인간이 되고 싶어했고, 버블검은 캔디 왕국에서의 왕좌를 빼앗기고 추방을 당했죠.
그리고 <말뚝> 편의 끝에서 마셀린은 결국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포기하고 다시 뱀파이어가 되고, 버블검은 캔디 왕국의 왕좌를 되찾게 됩니다. 각자 자신들의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 거죠.
인간이 되고 싶어했지만 결국 뱀파이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마셀린을 위로하는 핀, 제이크, 버블검에게 마셀린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 대답은 마셀린이 본인의 진심을 담아 버블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이것이 사랑의 고백인 이유는 마셀린과 버블검이 헤어졌던 이유를 생각하면 더욱 명료해 집니다. 마셀린은 철부지라 버블검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귀었을 뿐더러, 버블검을 이해하고 양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탄이 난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마셀린이 잘 못하는 게 있다면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셀린이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고마움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이상입니다. 조금 더 버블검을 이해하고, 양보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말뚝>편을 마무리하는 노래 ’Everything Stays’는 지금까지 이야기 한 모든 내용들을 완벽하게 정리해주는 노래기도 합니다. 마셀린은 뱀파이어로, 버블검은 공주로.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함께 모험을 하며 조금씩 성장했고, 변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마셀린과 버블검의 관계는 ’연인’으로 확정됩니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8x01
그리고 결말에 이르면 마셀린이 버블검 공주를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버블검 공주도 마셀린을 위해 양보하게 됩니다. ’소박한 곳에서 연인과 함께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다’는 마셀린의 소망을 위해 버블검은 캔디 왕국을 통치하는 시간을 줄이고 마셀린에게 시간을 할애하기까지 하죠.
이번 타래는 버블검과 마셀린의 관계를 요약하는 명곡 ’Slow Dance with You’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